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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SPORT

제임스 헌트에 관한 추억 : 1977년의 어느 테스트 날

사진:Sutton

 포뮬러원 드라이버에게 테스트는 시험 전의 복습이나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전의 사전 준비와 같은 지루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제임스 헌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977년 시즌 중반을 지나던 시점에 헌트와 그의 팀 멕라렌은 초반에 반복된 리타이어로 챔피언십 방어에 고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멕라렌은 머신을 개발하길 원했고 레이스 일정 사이에 수시로 테스트를 끼워 넣었다. 그러나 헌트의 흥미는 테스트에 없었다.

 헌트가 절친한 친구 니키 라우다와 잘츠부르크에서 폴 리카르드 서킷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두 사람은 전날 밤 술잔을 기울였지만 라우다는 헌트의 페이스를 쫓아가지 못했고 다음 날 있을 테스트를 생각해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라우다에게 그날은 “지독한 밤”이었다. “술을 마시며 끊임없이 담배에 불을 붙여댔습니다. 그를 당해낼 수 없어 먼저 침대로 향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공항 활주로에 안개가 걷히고, 라우다는 비행기 안에서 헌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륙 전 마지막 점검을 받고 있던 비행기를 향해 택시 한 대가 활주로를 가로 질러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다란 휴대용 스테레오를 한 손에 쥔 헌트가 내렸고 그 뒤로 아리따운 여성 한 명이 따라 내렸다. 언뜻 보기에도 어딘가 지쳐보인 오스트리아인 여성은 잔디 얼룩이 선명한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헌트는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뒤 비틀거리며 비행기에 탑승해 곧바로 곯아떨어졌고 서킷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다.
 
 테스트는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시즌 초 좋은 성적을 거뒀던 라우다는 엔진이 고장난 페라리 머신이 수리를 받는 동안 피트월에서 헌트의 주행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몇 분 뒤, 갑자기 서킷에 경보가 울렸다. 순간 헌트가 생각난 라우다는 두려움에 소리쳤다. “젠장! 제임스가 아직 술에서 깨지 않았어. 분명 충돌한거야!”

 라우다는 헌트의 팀 멕라렌 보스 테디 메이어와 구급차에 올라 사고 현장으로 갔다. 꿈쩍않는 멕라렌이 가까워졌을 때, 라우다는 머신에 특별히 파손된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라우다와 메이어는 콕핏에서 레이스 시트에 몸을 깊숙히 파묻고 있는 헌트를 목격했다.

 곧바로 상황을 알아챈 메이어는 헌트를 호텔로 돌려보냈다. “제임스. 내 생각에 넌 호텔로 돌아가 잠부터 충분히 자는 게 좋겠어.”

 그제야 라우다도 상황을 알아챘다. “제임스 멍청한 자식! 차를 세워두고 잠든 거였어”


제임스 헌트의 전기 중에서..